2026.06.17 (수)

  • 구름많음동두천 ℃
  • 맑음강릉 ℃
  • 맑음서울 ℃
  • 구름많음대전 ℃
  • 맑음대구 ℃
  • 흐림울산 ℃
  • 흐림광주 ℃
  • 구름많음부산 ℃
  • 흐림고창 ℃
  • 제주 22.9℃
  • 구름많음강화 23.3℃
  • 구름많음보은 23.7℃
  • 맑음금산 24.3℃
  • 구름많음강진군 24.3℃
  • 흐림경주시 20.9℃
  • 구름많음거제 24.5℃
기상청 제공

기고 칼럼

배신과 변절의 이름 앞에서

한순희 전 시의원(수필가)

정치는 때로 치열한 권력의 전쟁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흐른 뒤 역사가 끝내 기억하는 것은 ‘누가 권력을 가졌는가’가 아니라 ‘누가 끝까지 사람을 지켰는가’이다.

권력은 유한하고 자리 또한 잠시 머물다 가지만, 신의를 저버린 이름은 오래도록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는다.

시의원 3선과 한 번의 낙선, 그 긴 시간 속에서 참 많은 인연을 만나고 또 품어왔다.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때로는 사업적이든 삶의 여러 갈래에서 마음을 나누며 살아왔다.
그래서 더 아팠다.

믿었던 사람에게 받은 배신은 단순한 실망이 아니라, 오래 쌓아온 세월이 한순간 무너져 내리는 듯한 깊은 상처였다.


                             < 한 순 희 (전/시의원) 수필가 >

가장 신뢰했던 동반자가 등을 돌리는 순간, 가슴 속에는 말로 다 담지 못할 통한의 탄식만 남았다.

세상은 참으로 정교하고 치밀했다.

계산하지 못한 나의 진심은 때로 방향을 잃고 떠돌았고, 등 뒤에서 들려오는 오해와 수군거림은 날카로운 조각이 되어 마음 깊숙이 박혔다.

문인으로서, 또 시의원으로서, 아내와 엄마로 지켜온 자존감마저 흔들리던 날들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여전히 세상의 생리를 다 알지 못한 채 살아온 사람이었다.

풍족한 들판에서 뛰놀던 어린 시절의 마음을 버리지 못한 채, 사람을 믿고 정으로 살았다.
우리 부부는 계산에 익숙하지 않았고, 요령보다는 본심을 앞세우며 살아왔다.

밥 한 끼, 따뜻한 차 한 잔, 작은 선물과 마음의 용돈까지 아낌없이 나누며 살았다.

취직을 부탁받으면 뛰어다녔고, 억울한 민원이 있으면 해결하려 애썼으며, 전문직 남편의 건축사 일과 연결된 도움 또한 마다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의리를 말하면서도 등을 돌리는 사람들, 어려운 순간 외면하는 비겁함도 숱하게 보아왔다.

요즘의 나는 마치 막이 내린 무대 위에 홀로 남겨진 사람 같다.
세상의 냉랭한 등을 바라보며, 내가 믿어온 가치들이 조롱받는 듯해 한동안 숨조차 가쁘게 느껴졌다.

어제는 마치 내 마음을 닮은 듯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그 빗속에서 문득, 저를 위해 기꺼이 목소리를 높여주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치열한 응원과 따뜻한 진심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사람의 마음결을 읽어 문장으로 옮기며 살아온 수필가이기에, 그분들의 호의와 사랑이 얼마나 깊고 무거운 것이었는지 누구보다 잘 안다.
그 마음은 오래도록 내 가슴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오늘 아침 남편과 손을 잡고 수영을 다녀왔다.
그리고 반가운 부부를 만나 점심을 먹고, 운동 삼아 골프연습장에도 등록했다.
비록 내가 꿈꾸던 푸른 초원의 계절은 지나갔을지 모른다.

하지만 낙엽이 모두 진 자리에서야 비로소 땅의 생살이 선명히 드러나듯, 나는 이제야 16년 정치의 시간을 내려놓고 온전한 ‘나 자신’과 마주 서게 된다.

타인의 시선이라는 파도 속에서 흔들리던 시간을 뒤로하고, 이제는 ‘한순희’라는 본래의 이름으로 다시 살아가려 한다.

나는 여전히 평범한 아내로 뜨개질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며, 향기로운 커피 한 잔 앞에 마음을 내려놓을 것이다.
그리고 상처 속에서도 사람을 믿으려 했던 그 마음만은 끝내 잃지 않으려 한다.